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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현의 테크와 사람]<9>반도체산업 육성, 시간이 없다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lt;9&gt;반도체산업 육성, 시간이 없다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반도체와 같은 전략산업으로 초점이 모이고 있으며, 미국은 '칩4'라는 경제동맹을 통해 중국의 추격을 막으려 하고 중국도 반도체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를 꼽을 만큼 반도체산업은 '산업의 쌀'로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반도체 육성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소리는 요란하지만 아직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고 한다. 공장에 공급할 용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클러스터의 용수 공급시설을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여주보에 설치하려고 하는데 여주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한강수계 상수원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 등 지역 발전을 제한해온 많은 규제부터 풀어달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도 다양한 육성책을 제안하며 협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최종 결정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중앙정부와 지역자치단체 모두 핵심산업 클러스터라는 국가 어젠다에 얼마나 성의껏 임했는지, 이 클러스터의 국가적 중요성을 얼마나 절실히 알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회는 '반도체특별법'을 만들고 여당에서도 특위를 구성해 관련 법안 두 개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부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수립해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2027년까지 5700명을 더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2023년부터 '반도체 특성화 대학'을 선정하는 등 지원을 확대해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양성한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모두 5702명 늘리기로 했는데, 내역을 살펴보면 석·박사 1102명, 대학 2000명, 전문대 1000명에 직업계고 1600명을 합친 숫자다. 대학이 기업과 함께 채용을 조건으로 학과를 신설할 경우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릴 수 있는 '계약정원제'도 도입한다지만 이러한 제도는 이미 있던 내용이다. 이러한 비전은 너무 약하다.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고 싶어도 관련 전공 교수의 부족, 기업과의 직접 연계 부족이라는 어려움에 과감히 인력양성에 나서기 어렵다. 중국은 이미 50만명의 관련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요 대학들이 30만명의 인력을 추가로 배출할 예정이다. 칭화대, 푸단대 등 중국의 명문 대학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정부도 관련 규제의 적극 완화 등으로 화답하고 있다. 특히 고급 반도체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학과 신설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산업현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큰 인재를 신속하게 배출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도 40여년 반도체 산업에서 배출된 우수한 전·현직 인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어떻게 교육현장에서 활용하느냐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 창업도 중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2020년 단 한 해 동안에만 1만5000여개 반도체 스타트업이 세상에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급 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라고 한다. 이러한 반도체 스타트업 생태계의 급성장 덕분에 중국 반도체산업은 더 이상 저가형 저성능 칩이 아닌 고가의 고급 칩 중심으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에겐 인력도 부족하고 장비도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신규 인력 배출은 규제에 신음하고 있고 창업도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 선도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래개구(飯來開口), 즉 밥이 오면 입을 벌리는 게으른 태도로 우리는 반도체산업의 혁신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