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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 대기자의 과학기술이 미래다

전자신문은 '이현덕 대기자의 과학기술이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 역사를 입체 조명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한국 과학사를 종합 정리해서 미래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입니다.

시리즈는 총 4부로 연재합니다. 1부 과학기술의 발자취, 2부 대통령과 과학기술 국정과제, 3부 과학기술 패권의 길, 4부 미래 과학기술과 마지막 좌담회 형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필자인 이현덕 대기자는 전자신문에서 논설실장, 편집국장, 논설주간으로 재직했습니다. 지금은 대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자료수집은 물론 각계각층의 인물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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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2대 과학기술처 장관에 최형섭 박사 임명

    초여름 더위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971년 6월 3일 오후 박정희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포함해 8개 부처 개각을 단행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 들어간 백두진 국무총리가 내각 일괄사표를 박 대통령에게 제출하면서...

    2022-06-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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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한국과학원 1978년 첫 박사 2명 배출

    1975년 8월 20일. 한국과학원(현 KAIST)은 이날 오전 11시 과학원 대강당에서 제1회 석사학위 수여식을 거행했다. 1973년 3월 5일 첫 입학식을 치른 후 2년 6개월여 만에 첫 이공학 석사 배출이었다. 학위 수여식에...

    2022-06-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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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과학원

    한국과학원(현 KAIST)이 석사과정 합격자를 발표한 지 1개월여 후인 1973년 3월 5일. 한국과학원은 이날 기숙사 건물에서 제1회 석사과정 입학식을 열고 과학기술 한국을 향한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과학기술 미...

    2022-06-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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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한국과학원 '특전 세트'

    “이게 정말이야.” 1972년 9월 2일. 한국과학원(현 KAIST)이 1973년도 학생모집 요강을 발표하자 국민 반응은 놀람 그 자체였다. 과학원은 요강에서 모든 학생에게 학비 면제와 장학금 지급, 기숙사 제공, 여기에...

    2022-05-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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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새 술은 새 부대에'…최고 교수 영입

    “새 술은 새 부대에, 최고 교수 모셔라.” 한국과학원(현 KAIST)은 이런 방침에 따라 미래 과학한국 인재를 양성할 교수 영입에 나섰다. 이상수 원장과 정근모 부원장도 백방으로 뛰었다. 당시 과학원의 지상과제는...

    2022-05-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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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서울 연구개발단지 기공

    “과학기술은 국력 평가의 척도이며 국가발전의 열쇠입니다. 서울 연구개발단지는 한국 과학기술 개발의 중추가 될 것입니다.” 1971년 4월 14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홍릉 임업시험장 부지에서 열린 서울연구개...

    2022-04-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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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한국과학원 초대 원장 이상수·부원장 정근모

    1971년 1월 27일 오전. 한국과학원 설립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국과학원(현 KAIST) 초대 원장에 이상수 원자력청장을 임명했다. 이와 함께 7명의 당연직 이사와 6명의 선임이사도 임명했다. 당연직 이사...

    2022-04-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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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과학원 조사보고서 제출

    오곡이 누렇게 익어 가는 1970년 9월 16일. 해너 미국국제개발처(USAID) 처장이 김학렬 경제부총리 초청으로 이날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해너 박사는 한국과학원 설립과 기술원조 지원의 최종 키를 쥔 인...

    2022-04-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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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과학원 설립 조사단 내한

    “한국과학원 설립은 과학기술처가 맡아서 추진하시오.” 박정희 대통령의 이 말에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1970년 4월 8일 박 대통령의 지시 이후 한국과학원 설립은 과학...

    2022-03-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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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한국과학원법 국회 통과

    1970년 5월 4일. 과학기술처는 전문 20조의 한국과학원(현 KAIST) 법안을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과학기술처는 법안 제안 이유로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

    2022-03-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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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과학원생 병역특례 결정

    1970년 3월 19일. 과학기술처는 김기형 장관 명의의 초청장을 정근모 박사(전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보냈다. 과학기술처가 정 박사를 초청한 이유는 한국과학원 설립을 자문하기 위함이었다. 과학기술처는 당시 대외...

    2022-03-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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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정근모 박사, 과학대학원 설립 제안

    1969년 1월 어느 날. 미국 뉴욕공대에서 교수로 일하던 정근모 박사(전 과학기술처 장관)는 운명적인 뉴스와 만났다. 뉴욕타임스를 읽다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존 해너 미시간주립대 총장이 미국 국제개발처(USAID...

    2022-03-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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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한국 전자산업 대부, 김완희 박사

    1969년 3월 하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완희 박사에게 전문을 보냈다. 공업 진흥을 지원하는 대통령 자문역(諮問役)을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거절할 수 없었다. 대학 강의...

    2022-02-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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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전자공업 진흥법 제정

    1968년 8월 5일. 김완희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자공업 진흥조사보고서 브리핑을 끝낸 뒤 이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인 8월 중순. 신동식 청와대 과학담당 비서관이 김 박사에게 연락했다. 9월 초 미국...

    2022-02-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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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첫 전자공업 서막...조사보고서 완성

    김완희 박사는 1968년 3월 말부터 조사 보고서 작성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조사 보고서는 한국 전자공업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고민과 열정을 생각하면 한시도 지체할 수...

    2022-02-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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