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 카지노

[기고] 일본 사료에 적힌 '독도는 한국영토'

[기고] 일본 사료에 적힌 '독도는 한국영토'

일본은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이후 교과서, 외교 청서, 방위백서 등에서 마치 독도가 자신의 영토인 것처럼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거짓말 릴레이를 하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우리 국가기관에서 독도 관련 실수가 반복되는 것은 어떠한 변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본 사료를 근거로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널리 알리는 교육의 장이 요구되며, 거짓의 실체를 계속 지적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시마네현은 1876년 10월 16일 죽도(울릉도)외 일도(독도) 소속을 내무성에 문의했으며, 내무성은 1877년 3월 17일 다시 최고 기관인 태정관에 문의했다. 태정관은 동년 3월 29일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877년 4월 9일 시마네현은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답신을 받았다. 이것은 1692년부터 1699년까지 사료, 1836년 '덴포 다케시마 일건' 등 일관된 근거에 의해 내려진 결론이다. 특히, 2005년 일본인 우루시자키 히데유키 목사의 '기죽도 약도' 발견이 이를 명확히 입증해주고 있다.

1904년에는 독도 일본영토 편입 청원을 '한국영토'라며 거부했음에도, 1905년 독도를 무주지로서 일본 중앙정부의 고시 없이 시마네현에 은밀히 편입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 따라서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할 근거가 될 수 없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항복문서에 서명한 일본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코 평화조약(이하 평화조약)에서 독도를 누락시킨 채 조인했다. 1951년 10월 22일 중의원 특별위원에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스스로 표기한 '일본영역참고도'를 보면서, 시마네현 출신 야마모토 도시나가 위원의 독도 영역 질의에 구사바 류엔 정부위원은 '현재 행정구획에서는 독도가 일본에서 제외되었으나 평화조약에서는 일본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근거 없는 답변을 했다. 1952년 4월 28일 평화조약이 발효된 이후 1953년 11월 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본영역참고도'에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거듭 확인된 후에도 노동당의 질의에 오카타 부총리는 '국제법에 의해 일본 영토'라며 엉터리 답변을 했다.

주목할 부분은 평화조약에 언급조차 없었던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일본 스스로 제작한 지도를 보면서도 일본 영토라고 임의로 해석하는 과거 모습과 현재 독도 영유권 거짓 주장을 반복하는 일본의 현상은 매우 흡사한 DNA다.

시마네현 향토 사학자 다케우치 다케시의'죽도(독도)문제 고유영토론의 역사적 검토'에서 “영유권의 법적인 정당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의 규명이 불가결하다”고 밝혔다. 또 '각의 결정이 '국제법상 점령의 사실'이 있다고 인정한 단기간 '임시거처'를 '이주'라 하는 것은 무리이다'라고 빈집에 들어간 도둑의 범죄행위에 비유했다.

재일 박병섭 죽도(독도)문제 연구넷 대표는 '일본영역참고도와 일본 외무성의 독도 정책 모색' 논문에서 “1951년 10월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 영토임이 확실하다고 했으나 그 근거를 찾지 못했다. 외무성과 법무성 공동 편집 부속지도'평화조약에 따른 영역의 변경'에 독도는 그리지 않았다”고 썼다. 이것은 평화조약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국제법을 외면, 위반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를 운운하는 일본이다. 당시 평화조약에 초안, 심의, 서명까지 하면서 왜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시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한국은 평화조약의 비서명국이다. 불법성이 없는 독도, 한국의 고유영토를 수호할 뿐이다. 우리는 독도가 왜 한국의 고유영토인지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국가적 시스템을 가져야 하겠다.

정윤성 전 양영디지털고등학교 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