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션 카지노

[사설] '넛크래커'에 낀 韓 반도체 장비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가 경기도 오산에 연구개발(R&D)센터를 준비중이다. 오산 가장동에 1만7938㎡ 규모 부지를 매입하고 건설 허가까지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어플라이드는 투자규모, 가동시점 등 구체적 계획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R&D센터에는 전자빔(e빔)·식각·증착 등 반도체 장비 최소 20대 이상을 갖춰놓고, 연구인력 100명 이상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어플라이드가 센터를 만들면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에 이은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의 한국 R&D 투자다. 최근 삼성전자와 협력해 동탄에 공동 연구소를 세우겠다고 발표한 ASML까지 포함하면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 '빅4'가 모두 한국에 R&D를 두게 된다.

세계적 반도체 장비사들의 한국 진출 이유는 명확하다.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바로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 1, 2위고 낸드플래시는 각각 1위, 3위다. 시장을 과점할 정도로 메모리 분야에서 단연 앞서 있어 이들이 미래 시장도 주도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R&D 단계서부터 협력하려는 것이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사의 한국 R&D센터 위치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사의 한국 R&D센터 위치

세계적 반도체 장비사들이 한국서 연구개발을 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긍정적이다. 미래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마냥 환영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국산 장비의 설자리가 크게 위축되고, 자칫하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 산업은 가뜩이나 세계와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20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기업은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정도고,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0년 넘게 20%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이 따라오는 중이다. 미국 견제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이 자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PNC·나우라 등 중국 장비 업체들이 성장했고, 이들이 한국 장비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는 말 그대로 호두까기 기계에 끼인 호두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급망을 다변화하거나 안정화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도 설 수 있다는 경험을 지난 2019년 일본 수출규제로 했다. 당시는 소재가 문제됐다면 이제는 장비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휘둘릴지 모를 일이다. 뼈아픈 경험에도 실수를 반복하면 그보다 어리석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