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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시론]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과 한국 및 국제사회의 보호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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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10월 9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중국에 구금되어 있던 탈북민 2000여 명 중 600여 명을 강제 북송하였다는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은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는 탈북민에 대해 고문, 강간 등 성폭력, 자의적 구금, 심지어 처형, 강제 낙태, 영아살해 등 반인도 범죄를 자행하고 있어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거나 한국행을 원하면 제3국 추방 형식으로 보내야 한다. 대규모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는 몇 달 전부터 우려를 표명해 왔고 관련 부처인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도 공개적 북송 반대 입장을 냈다. 최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지난달 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석차 방중, 시진핑 주석과 가진 면담에서 탈북민 북송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우리의 분명한 반대에도 중국은 사전에 아무런 통보없이 군사작전 하듯 탈북민을 북한에 넘겨준 것이다.

중국이 난민협약 당사국이면서도 탈북민을 협약상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북한과의 관계와 중국의 한반도 정책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과 1960년 '북·중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 협정', 1986년 '변경 지역에서의 국가안전과 사회질서를 위한 상호협력의 정서'를 체결했고, 길림성은 1993년 '길림성 변경 관리 조례'를 제정해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체류 권한을 인정하면 순식간에 난민행렬이 이어져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 국가안보상 '완충지대' 상실에 따른 미국의 영향력이 두만강, 압록강까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은 외부 사회의 강제 북송에 대한 우려에 대해 “중국에는 소위 '탈북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원인으로 중국에 온 불법 입국 조선인(북한인)에 대해 중국은 시종일관 책임지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국내법과 국제법, 인도주의를 결합한 원칙을 견지하며 적절하게 처리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중국은 탈북민 문제에 있어 자국의 정책적 고려와 북한과의 관계를 국제법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중국의 탈북민 강제송환에 대해 한때 우리 정부는 해외에 있는 탈북민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나 대체로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해 오면서 물밑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 왔다. 외교부에 해외 탈북민의 한국행 지원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부서명도 '민족공동체해외협력팀'이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되어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확인되었지만, 통일부 업무 보고에 해외 탈북민 보호 및 강제 북송 중단 관련 업무 보고는 없었다. 한때 재중 탈북민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유엔 난민최고대표(UNHCR)나 현 유엔 사무총장,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에서도 중국 눈치를 보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2005년 이후 수년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탈북민 문제 논의를 위해 열린 한-UNHCR 연례협의회도 언제부터인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북한이탈주민(탈북자) 현황
북한이탈주민(탈북자) 현황

이제는 중국을 상대로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는 조용한 방식의 해결은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적극적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대내외 여건도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인권을 중시하는 가치 외교를 표방하고 있고 최근 임명된 통일부 장관도 직제 개편을 통해 북한 인권 관련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도 지난 13일 2007년 로버트 킹 전 특사 이후 약 6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특사 자리에 줄리 터너를 임명했다. 터너는 정식 취임 후 첫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시민단체,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를 논의했으며 유엔에서 이신화 북한인권대사와 함께 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사회와 단합해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도 북한 인권과 강제 북송 문제를 강하게 다룰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은 2024년~2025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돼 내년에는 이미 지난 해부터 활동하고 있는 일본과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함께 같은 시기 안보리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8월에는 안보리에서 6년 만에 북한 인권 문제가 공개회의 의제로 채택됐다.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이 논의된다는 것은 북한이 강제 북송 탈북민과 자국민을 상대로 자행하는 반인도적범죄가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험으로 인식된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반인도적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보호책임(R2P) 원칙이 2005년 유엔 세계 정상회의 결의와 2006년 안보리 결의를 통해 국제적 규범으로 확립돼 있다.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반인도적범죄 주요 가해자는 안보리를 통해 국제재판소에 회부하거나 특별재판소를 설립해 다룰 수 있다. 비록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위 방안이 막힌다고 하더라도 북한 최고 지도부에 대한 처벌 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대북 압박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안보리와 함께 총회에서도 우방국들과 북한 최고 지도부에 대한 책임규명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북한 인권 침해 억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이달 23일 엘리자베스 살몬 북한인권특별보고관, 31일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와의 상호대화에서 한국을 비롯한 북한 인권 유관국들은 중국의 탈북민 대규모 강제 북송을 규탄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과 국제사회는 국제사회의 현안인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 대응에 있어 후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다. 그러나 김정은이 아사자가 발생함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북한 주민을 철저히 통제하고 인권 탄압을 일삼아도 국제사회의 제재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중 국경 봉쇄와 탈북민 강제 북송으로 북한 인권 침해를 돕는 중국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제는 한국의 주도하에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인권을 북한 핵 문제와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가해자 처벌과 제3국 탈북민을 포함한 북한 주민의 보호책임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국제평화와 한반도 구성원 모두의 운명이 달린 일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email protected]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필자〉평남 평양 출신으로, 서울 강남구갑 국민의힘 소속 21대 국회의원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귀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중국 베이징외대 영문과 출신이며, 덴마크·스웨덴·벨기에 등 유럽 지역 중심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탈북 이전에는 주영 북한 공사로 활동하며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서열 2위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귀순 이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통일부 국제안보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소속으로서 주영 북한 공사로 있으면서 축적한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