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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디지털 권리장전'이 놓치고 있는 것들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디지털 권리장전'이 놓치고 있는 것들

정부 주도로 준비 중인 '디지털 권리장전'이 곧 발표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2023 다보스포럼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을 준비 중임을 밝혔다. 디지털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인류 보편적 가치 및 권리로 규정하는 디지털 시대 새 통합의 틀이다. 정부는 연내 '디지털사회 기본법' 제정에도 힘쓰고 있다.

'권리장전(Bill of Right)'은 1689년 영국 법률에 도입되고 미국 수정 헌법도 수용한 각국의 헌법이 규정하는 '인권 조항'을 말한다. 알려진 바로는, '디지털 권리장전'에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투명성 보장, 디지털 격차 해소 등 조항이 포함될 것이다.

'디지털 권리장전' 제정 주안점은 복잡해지는 디지털 심화 쟁점의 해소를 위한 공통의 기준과 원칙을 규범하기 위한 정책반영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권리장전' 선언은 시의적절하며 디지털 강국을 자처해온 한국의 디지털 모범 국가로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좋은 기회다.

한편 권리장전이 '디지털 심화 쟁점'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만, 디지털 세상 인류 보편의 가치, 권리, 질서, 규범의 관점이 온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에 앞서 지난해 유럽연합과 미국, 영국, 국제인권단체는 각각 '디지털 권리 및 원칙에 관한 선언문'과 '인공지능 권리장전 청사진', '디지털 규제 원칙' 및 '세계 디지털 권리원칙'을 발표한 바 있어, 우리가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할 만큼의 차별점이 잘 표현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선진국은 디지털 권리를 자연권인 '인권적 기본권'으로 보아 '정보인권 보장', '디지털 격차 해소', '디지털 문해력 향상' 등에 중점을 뒀다. 한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능동적 관점에서 기술발전 고도화에 대응해 보편적 디지털 서비스와 디지털 활용능력 고도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아쉬운 점은 이처럼 진일보한 관점은 수동적인 '인권적 기본권'을 넘어 능동적으로 모든 시민의 '디지털 컴퓨팅 환경'을 보장해야 실현 가능한 '사회권적 기본권'의 구체화와 보장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행복추구권, 자유권, 평등권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천부의 가치라면, 근대의 교육, 근로, 환경, 보건 등 '사회적 기본권'은 오직 개별적 법률을 통해서만 구체화되고 실현 가능한 권리다. 디지털 세상은 규범 정립 이전에, 전기와 망 없이는 동작조차 하지 않고, 계정 없이는 접근할 수 없으며, 저장공간 없이는 단 한 가지도 소유할 수 없다. 수동적 인권 보호만으로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인권이 '모든 이의 자연권'이라면 기본권은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정보인권'이 소통과 프라이버시 보호의 '인권'이라면, '디지털 시민 기본권'은 모두가 저마다 디지털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 속의 삶을 보장하는 권리다. 곧 발표될 '디지털 권리장전'이 모든 이의 '디지털 컴퓨팅 환경'을 보장하는 적극적 '디지털 시민권'을 담아 디지털 세상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립하기를 기원한다. 독과점 빅테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소비자로 전락해버린 우리의 기울어진 디지털 세상을 '디지털 권리장전'이 조금 더 평평한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