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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인공지능의 창작물과 저작권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

'복제'와 '표절'과 '모방'의 차이점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지만, '복제'가 원본과 같은 '복제본'을 만드는 행위이고, '표절'이 원본의 모습만 베끼고 원본이 가진 고유성의 그늘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가련한 처지라면, '모방'은 흉내 내기를 통해 원본이 가진 고유성을 상징적, 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몸짓이다.

인류는 흉내내기의 명수인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에 속해,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표절'해왔다(Homo Plagiarius). 바야흐로 생성 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한 '대표절 시대'다.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에 발명자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특허출원을 시도했던 스티븐 탈러 박사가 이번에는 그림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한 '출력물'에 대한 탈러 박사 자신의 저작권을 미국 저작권청에 신청했다. 저작권청은 '인간의 저작성(human authorship)' 부족을 이유로 거부됐다.

탈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워싱턴 지방법원은 미국 저작권법이 '오직 인간의 창의적인 작업물'만 보호한다고 판시해 AI 기계로 생성한 저작물은 미국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아님을 천명했다. 탈러의 변호사는 현재의 사진 작품처럼 AI가 생성한 그림도 결국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것이며, 이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인간과 사진 기계에 이은 인간과 AI 사이의 저작권 분쟁 서막이다.

'대량표절 시대'에 예술의 고유한 분위기인 '진정성'은 지켜질 수 있을까?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사진과 영화라는 기계적 재생산 기술의 발전이 예술품의 고유한 분위기인 '진정성'을 파괴할 것을 걱정했다. 예술품의 첫 창작 상황에서 빚어지는 예술품의 진정성이라는 유일무이한 가치는 사진과 영화라는 복제 기술을 통해 온 세상에서 쉽게 재현되며 그 빛을 잃어갔다. 한편, 사진 기술은 예술의 대중화와 민주화를 촉발했으며, 예술에 있어 예술가의 '창작 상황' 못지않게 해당 창작품의 사회적 '전달'과 '수용'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했다.

오늘날 공장에서 '대량생산' 되는 '축구공들'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듯이, 생성 AI 기계의 '대량표절 출력물들'도 저작권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진과 영화 예술 장르 새로운 출현 경험으로 우리가 깨닫게 됐던 것처럼 창작 상황의 고유한 분위기를 담아낸 한 장의 사진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흑과 백의 이분법이 아닌 정반합의 중간 영역을 찾아가는 중이다. 자동화된 '하이테크 표절 기계'인 미드저니나 챗GPT의 대량 출력물이 모두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는 없겠지만 극한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저작자의 고유한 분위기인 '진정성'을 담아낸 출력물이 저작권을 인정받는 날 또한 올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의 주체는 미드저니나 챗GPT라는 '자동화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를 저작도구로 사용해서 창작을 수행한 창작자일 것이다.

AI 스스로 사람보다 훌륭한 작품을 '얼마든지' 생성해낼 수 있는데 무슨 편협한 주장이냐고? 물론 AI는 사람보다 더 멋들어진 그림들을 대량 출력해낼 수 있고 그중 일부는 예술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생성해낼 수 있는 '자기표절' 특성으로 '진정성'을 갖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진정성'은 창작자의 '창작 상황' 못지않게 창작품의 '전달'과 '수용' 과정을 통해 완성돼가는 미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모방이고, 사람들은 모방을 통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이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모방'의 의미를 강조한 말이기도 하지만, 모방의 결과물이 강렬한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전달'과 '수용'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원본과 같은 복제본을 찍어내는 '복제'나 원본이 가진 고유성을 '영혼 없이' 베끼다 멈춰선 '표절'과 달리, 흉내 내기를 뜻하는 '모방'은 우리가 원본에서 감지한 고유성을, 우리 자신의 상징체계를 동원해서 이해하고 표현해,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몸짓이다. 우리는 욕망하는 것을 모방한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