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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훈의 디지털플랫폼정부 철학]디지털 민주주의

오종훈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프라분과 위원장)
오종훈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프라분과 위원장)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용어를 들으면 일반 국민이나 업무를 수행할 공무원도 단순히 정부가 그동안 해 온 전산화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 정도가 아닐까 하는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과거 정부가 바뀔 때 똑같은 내용을 용어만 바꾸어서 홍보하는 사례를 목격한 현장 실무자는 더욱더 그렇다.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은 행정에 더 많은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디지털기술과 플랫폼 서비스 모형을 채용, 정부의 운영 패러다임을 바꾸고 국민에게 진정한 민주주의 경험을 돌려주고자 하는 야심 찬 계획이다.

출처 : 주한미국대사관홈페이지
출처 : 주한미국대사관홈페이지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명확한 선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합시다.”

링컨이 언급한 민주주의 정부의 세 가지 원칙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는 국가의 정부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검토해 보자.

◇국민을 위한(국민 중심의 원칙)

현재 행정시스템으로는 정부나 공무원이 국민의 의사가 어떤지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런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대표자를 뽑는 선거 때나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현대의 주요 기업은 이미 실시간으로 고객 의사를 반영해서 서비스하는 운영 원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넷플릭스·아마존 같은 이커머스기업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개개인이 원할 만한 콘텐츠 및 상품을 고객에게 실시간 추천한다. 민간 비즈니스에서는 필수가 된 '개인화 추천시스템'이다.

넷플릭스의 개인화된 추천메뉴, OTT는 나에게 최적을 컨텐츠를 골라주는데 목숨을 건다. 그런데 국민들의 이용 빈도와 편의성을 높이기위해 목숨을 거는 정부의 서비스가 있을까?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개인화된 추천메뉴, OTT는 나에게 최적을 컨텐츠를 골라주는데 목숨을 건다. 그런데 국민들의 이용 빈도와 편의성을 높이기위해 목숨을 거는 정부의 서비스가 있을까? 출처 : 넷플릭스

정부 서비스는 어떤가. 국민이 아니라 공무원의 행정 프로세스에 따라 만들어졌다. 국민이 보면 매우 복잡하고 불편하다. 국민 불편을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그대로 본따 설계했기 때문이다. 혁신이 필요하다. 영국 정부는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 '국민은 정부의 행정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부 조직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는 국민 중심 원스톱 서비스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에 의한(국민 참여의 원칙)

현대 한국 소비자는 민간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매우 익숙하다. 판매자는 플랫폼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싼 값에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정부의 행정 서비스는 아직도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형태를 지속하고 있다. 서비스가 불편하다고 항의해도 돌아오는 답은 “규정이 그렇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불편을 감수한다”와 같은 대답뿐이다. 근본 이유는 제2, 제3의 경쟁서비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정부의 운영원칙은 국가가 꼭 해야 할 기본 업무를 제외하고 행정 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위탁해서 국민(민간기업)이 직접 서비스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민간기업 간 경쟁과 고객중심 서비스 노하우가 서비스 질을 몰라보게 바꿀 수 있다.

◇국민의 (국민 선택의 원칙)

어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한 배달앱 서비스 리뷰 하나를 살펴보자. 많은 예산을 썼지만 국민평가는 냉정하다. “수수료 문제도 있고 해서 적극 이용하려고 하지만 문제 많음.” “결제완료 버튼 눌러도 반응이 없어서 여러번 연타하게 됨.”

이 원칙은 국민의 선택권에 대한 것이다. 좋아하는 서비스를 선택하고, 불편한 서비스를 쓰지않을 수 있어야 진정 국민의 정부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결정은 정부의 공무원이 해 왔으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민간 앱스토어 예를 생각해 보자. 수많은 개발자·기업이 경쟁하기 때문에 정말 잘 만들고 소비자를 만족시켜 주는 제품이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창의적인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만족하는 서비스에 세금이 쓰이길 원하지 뜻이 좋아도 정부가 직접 만든 불편한 앱은 쓰고 싶지 않다.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뉴욕 방문에서 다음과 같이 디지털민주주의 구상을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플랫폼 정부의 플랫폼은 디지털 기술로 어려운 이웃을 더욱 촘촘히 챙기는 새로운 복지의 획기적인 출발이며, 디지털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입니다. 심화된 디지털 시대의 모범 국가로서 그 성과를 세계 시민들, 개도국 국민들과 공유하겠습니다.” 당연히 가능하고, 가능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오종훈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프라분과 위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