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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단상]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될 국가전략기술을 기대한다

정병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정병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경제·외교·안보의 중심에 기술이 자리 잡은 기정학(技政學)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의 기술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일본 '경제안보법' 등 최근 법률 제정 사례에서 보듯 주요국은 10~20개 안팎의 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및 과학기술 거버넌스 신설 등을 통해 해당 분야의 경쟁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0월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의결했다. 12대 국가전략기술과 50대 세부 중점기술을 제시하고 명확한 임무와 목표를 설정하는 전략 로드맵 수립, 민·관 합동 국가전략기술 프로젝트 추진 등을 통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내용이다. 범부처 차원의 협업전략이 마련됐으니 이제 실행에 힘쓸 때다. 국가전략기술을 국가 핵심 경쟁력으로 기르기 위해 몇 가지 방향이 주요하게 고려되길 기대한다.

먼저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민간 역량이 최대한 활용되도록 기업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정부-민간 간 칸막이는 있을 수 없다. 특히 반도체나 이차전지처럼 이미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R&D를 이끌 수 있도록 정부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 이번에 추진하기로 한 범부처 민·관 합동 대형 R&D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기업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목표 설정, R&D 추진, 성과 창출 등 모든 단계에서 민간 참여와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민간이 참여해야만 국가전략기술 초격차가 온전히 우리나라 경쟁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술 패권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 인재 육성과 확보도 절실하다. 기술 패권 시대에는 과거처럼 기술과 인재의 왕래가 자유롭지 않다. 국가별로 핵심 인재를 육성하고, 육성된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관리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12대 국가전략 기술별로 핵심 인력의 수준과 특성이 다른 만큼 인력 현황 분석을 통해 정교한 맞춤형 인재 확보 방안을 수립하고, 이런 인재가 연구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안정적 연구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정부 R&D 투자 가운데 가장 높은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공공연구기관이 국가전략기술 분야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특히 양자기술이나 우주 분야처럼 장기적·안정적 기술 축적이 필요한 분야에는 공공연구기관 연구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가전략 기술 분야별로 우리나라 공공연구기관의 수준과 역량을 점검하고, 명확한 임무 관점에서 기관별 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범부처 차원에서 국가전략기술을 진두지휘할 '(가칭)국가전략기술 특별위원회' 설치와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특별법은 지난 1월 야당, 5월 여당이 각각 발의했으나 6개월 넘도록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 일본 등이 핵심 기술 육성을 위한 관련 법을 이미 제정한 만큼 우리나라도 관련 입법과 거버넌스 정립을 통해 탄탄한 제도적 기반 아래 수립된 정책이 안정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줘야 한다.

경제 발전을 위한 성장동력 확보 정책은 이제 기술 패권 시대를 맞아 외교·안보를 아우르는 기술 주권 확보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산업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국가 경쟁력 그 자체다. 이번에 마련한 국가전략기술 육성 방안이 효과적으로 시행돼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춘 기술 강국으로 다시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정병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