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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대학포럼]〈68〉규제중심적 대학정책,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

김이경 중앙대 대학원장·교육학과 교수
김이경 중앙대 대학원장·교육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자타공인 교육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룩한 성공사례 전형 국가이다. 이러한 성공 이면에는 주도면밀한 국가 수준의 기획과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 주도의 효율적 행정적·재정적 통제와 지원은 짧은 기간 교육의 양적 팽창과 질적 개선을 가능하게 했다. 교육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 사회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 발전을 이룩했다. 선진국 대열에도 진입했다.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고 올라 정점에 이르면 결국 갈 곳은 내리막길밖에 없다. 잘 나간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내리막길을 대비하지 못한다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2000년대 이후 대학정책은 초·중등교육 성공 방정식을 고등교육에 그대로 대입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간 경쟁 기반 특성화 유도라는 목표를 표방했으나 대학을 정부 주도의 각종 재정지원사업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재단하는 사이에 대학은 손발이 묶인 정부 시녀로 전락하고, 대학교육 양상은 판박이처럼 비슷하게 하향평준화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이 대세인 현 시점에서 한국 대학을 바라보니 진퇴양난·사면초가로 오도가도 못하는 모습이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 감소 문제가 침소봉대되면서 대학 정원 감축을 둘러싼 강력한 정부 규제가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다양성의 질식, 상명하복, 목적과 수단 전도, 셀 수도 없는 대학 평가 문서와 보고서들. 그야말로 전형적 관료제 병폐로 불리는 증거가 즐비하다. 대학 혁신이라는 표어가 무색할 정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대학 교육을 받은 개인 수준을 넘어 연구를 통한 지식 창출과 확산으로 교육을 통해 육성하는 인적자본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생존과 발전에는 대학 도움이 필수다.

그럼에도 20대 대선이 진행되는 동안 더 넓게는 교육공약 홀대, 좁게는 고등교육 공약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학생 수 감소와 14년 동안 등록금 동결이 초래한 대학 재정난과 위기, 대학 경쟁력 저하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이 1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미래 사회를 책임질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비전은 아직 드러난 것이 없고, 고등교육 정책 방향도 안개 속에서 불투명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협의회,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등 각종 단체가 주축이 돼 20대 대통령 당선인에게 대학 발전 정책을 제언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 대학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철폐와 고등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재정 지원 방안 재개념화이다. 이 두 가지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첫째 관 주도의 획일적·타율적 대학평가로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질식되지 않도록 규제 일변도의 대학평가 패러다임은 폐지돼야 한다. 숨막히는 릴레이 평가를 통해 단계적으로 달성되는 대학 특성화나 다양화는 보고서에나 존재할 뿐이다.

대학을 부정비리 대학으로 낙인찍고 불이익을 주는 관행이 대학평가 과정에서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됐다.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땅에 떨어진 신뢰 회복에도 힘써야 한다.

둘째 각 대학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긴 호흡으로 이어져서 꽃피우고 열매 맺으려면 고등교육 재정 지원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OECD 국가 수준은 고사하고 초·중학생 1인당 교육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등교육비 확보 방안에 대해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새 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가 한여름밤의 꿈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고등교육의 앞날에 희망을 품어 본다.

김이경 중앙대 대학원장·교육학과 교수 [email protected]